[프롤로그] 70년의 징벌, 그리고 남은 자들
한때 온 세상을 호령했던 다윗과 솔로몬의 찬란한 왕국, 이스라엘.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던 영광의 땅은 끔찍한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이유는 단 하나, '우상 숭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망각한 채 주변 이방 나라들의 풍습을 좇고, 그들의 여인들과 통혼하며 역겨운 우상들을 성전 안까지 끌어들인 대가는 참혹했다. 바벨론 제국의 말발굽 아래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졌고, 성전은 불탔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짐승처럼 사슬에 묶여 낯선 이방 땅으로 끌려갔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철저한 징벌의 시간, '70년'이 시작된 것이다.
바벨론의 화려한 문화와 편안한 생활에 동화되어 가는 긴 세월. 수많은 유다인들이 점차 자신들의 뿌리와 신앙을 잊고 이방인처럼 변해갔다.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은 점차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로 전락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지독한 절망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연 채 기도하던 자들이 있었다. 세상의 유혹에 타협하지 않고 눈물로 율법을 낭독하며, 언젠가 고향 땅에 돌아가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울 날만을 기다리던 '남은 자(Remnant)'들.
마침내 70년의 징벌이 끝나고 제국의 주인이 페르시아로 바뀌었을 때, 기적처럼 귀환의 문이 열렸다.
안락한 바벨론의 삶을 포기하고, 험난한 사막을 건너 잿더미뿐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는 미련하고도 위대한 자들. 에스라서에 지루할 정도로 빼곡하게 기록된 수만 명의 이름들은, 바로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침내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내고 빛으로 나아온 영광스러운 생존자들의 명단이다.
이제, 무너진 돌무더기 위에서 제2의 건국을 향한 피 튀기는 영적 전쟁이 시작된다.
[1부] 70년 만의 귀환, 그리고 눈물
세상을 호령하던 바벨론 제국이 무너졌다. 새롭게 패권을 쥔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의 통치 원년. 어느 날, 거대한 제국의 심장부에 상상조차 못 한 어명이 떨어졌다.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내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다.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 그리고 그곳에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라!"
70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노예처럼, 이방인으로 숨죽여 살았던 기나긴 세월이었다. 절망 속에서 죽어가던 유다인들의 귓가에 울려 퍼진 고레스 왕의 칙령은 거짓말처럼 달콤하고 비현실적이었다.
게다가 왕은 과거 바벨론의 네부갓네살(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약탈해 왔던 성전의 금은 기물들 무려 5천4백여 점을 모조리 창고에서 꺼내어 돌려주었다.
"돌아간다… 우리가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다윗의 후손인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를 중심으로 백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70년 전 포로로 끌려왔던 백발의 노인부터, 이방 땅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린아이들까지. 무려 4만 2천 명이 넘는 거대한 인파가 낙타와 말을 이끌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장정에 올랐다.
수개월의 험난한 여정 끝에 마침내 도착한 고향 땅. 그러나 그들을 반긴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불에 타 무너진 성벽, 잡초가 무성한 성전 터, 그리고 텅 빈 폐허뿐이었다.
게다가 주변에는 호시탐탐 이방인들을 노리는 사나운 원주민들의 시선이 칼날처럼 꽂히고 있었다. 당장 무너진 집을 세우고 성벽을 쌓아 방어선을 구축해야 할 위급한 상황. 하지만 리더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선택은 달랐다.
"가장 먼저 여호와의 제단을 세운다!"
그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무너진 성전 터에 가장 먼저 번제단을 쌓아 올렸다. 아침저녁으로 불을 피우고, 70년간 끊어졌던 절기를 다시 지키기 시작했다. 생존의 위협 앞에서도 그들이 붙잡은 것은 칼과 방패가 아니라, 잿더미 위에서 피어오르는 기도의 향연이었다.
이듬해 둘째 달. 드디어 제국의 후원과 백성들의 피땀 어린 헌신이 모여, 성전의 기초를 놓는 거대한 첫 삽이 떠졌다.
예복을 갖춰 입은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아삽 자손들이 제금을 치며 거대한 찬양의 합창을 시작했다.
"여호와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찬양 소리와 함께 성전의 거대한 기초석이 제자리를 찾아 내려앉았다. 그 순간, 폐허였던 광장을 가득 메운 4만 명의 백성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젊은 세대들은 기쁨에 겨워 목이 터져라 환호했다. 하지만 그 엄청난 환호성 사이로, 전혀 다른 질감의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아… 아아아…!"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 70년 전, 금으로 온통 뒤덮여 찬란하게 빛나던 솔로몬의 첫 번째 성전을 두 눈으로 보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과거의 영광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하고 작아진 새로운 성전의 기초를 보며, 지난 세월 자신들이 저질렀던 죄악과 잃어버린 영광에 대한 회한으로 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새 시대를 여는 벅찬 환호성. 잃어버린 시대를 향한 처절한 통곡.
그 두 가지의 거대한 감정이 잿더미 위에서 뒤엉켰다. 도무지 환호하는 소리인지, 통곡하는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는 거대한 울림이 예루살렘의 하늘을 뒤흔들며, 멀리 있는 원수들의 귓가까지 쩌렁쩌렁하게 퍼져나갔다.
[1부 끝]
[2부] 멈춰버린 심장, 16년의 공백
예루살렘에 울려 퍼진 성전 재건의 환호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너진 폐허 위로 거대한 뼈대가 세워지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예루살렘 주변을 차지하고 있던 사마리아의 총독과 이방 세력들이었다. 그들은 뱀처럼 교활한 미소를 띠고 스룹바벨과 유다의 족장들을 찾아왔다.
"우리도 당신들과 함께 성전을 건축하게 해주시오. 우리도 당신들처럼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왔단 말이오."
듣기엔 달콤한 연합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방 세력들이 겉으로는 협력을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성전의 기득권을 쥐고 유다를 통제하려 한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스룹바벨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와 우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홀로 건축할 것이다!"
단칼에 거절당한 방해꾼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가셨다.
"…감히 굴러들어온 돌 주제에. 두고 보자. 이 공사가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날부터 피 말리는 사보타주(방해 공작)가 시작됐다. 방해꾼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관리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먹여 공사 자재의 반입을 막고, 현장에 깡패들을 풀어 백성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치명적인 공격은 '외교전'이었다.
시간이 흘러 페르시아의 새로운 왕, 아닥사스다가 즉위하자 방해꾼들은 치밀하게 조작된 투서(고발장)를 제국의 수도로 쏘아 올렸다.
[위대하신 아닥사스다 폐하께 고하나이다. 저 패역하고 악한 예루살렘 성읍이 재건되고 있사옵니다. 과거의 기록을 살펴보시옵소서. 저 성읍이 완공되면 그들은 절대 세금을 바치지 않을 것이며, 결국 강 건너편의 영지를 모두 잃게 되실 것입니다!]
제국의 분열을 가장 두려워하던 아닥사스다 왕은 즉각 과거의 반역 기록을 확인했고, 분노하여 무력으로 공사를 중단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당장 그쳐라! 왕의 어명이다!"
무장한 제국의 군대와 방해꾼들이 기고만장한 얼굴로 들이닥쳤다. 성전을 짓던 망치질이 멈췄다.
가슴 벅찬 환희로 시작했던 성전 재건은, 그렇게 흉물스러운 뼈대만 남긴 채 처참하게 중단되었다. 그것은 유다 백성들의 심장이 멈춘 것과도 같았다. 1년, 2년, 5년…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백성들의 가슴속에 타오르던 신앙의 불꽃은 차갑게 식어버렸고, 어느새 그들은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아직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때가 이르지 않았다. 어명인데 우리가 어찌하겠는가?'
성전 터에 잡초가 무성해지는 동안, 백성들은 각자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화려한 집을 짓고 치장하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무려 16년이라는 지독한 공백기가 예루살렘을 집어삼켰다.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어다!"
16년의 무기력한 침묵을 찢고, 예루살렘 한복판에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였다. 백발이 성성한 선지자 학개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유다 백성들을 향해 피를 토하듯 외쳤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화려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너희가 씨를 많이 뿌려도 수확이 적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삯을 받아도 구멍 난 전대에 넣음이 어찌 된 일이냐! 당장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것은 단순한 질책이 아니라, 16년 동안 잠들어 있던 영혼을 후려치는 벼락이었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굳었던 주먹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제국의 어명? 방해꾼들의 칼날?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왕의 허락도 떨어지기 전에 죽기를 각오하고 다시 망치를 집어 들었다.
"무슨 짓이냐! 누가 너희에게 다시 이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했느냐?!"
강 건너편의 총독 다드내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길길이 날뛰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유다의 장로들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당당하게 맞섰다.
"우리는 크신 하나님의 종이다! 일찍이 바사 왕 고레스가 내린 칙령이 있으니, 원한다면 바벨론의 왕실 보물창고를 뒤져 그 조서를 확인해 보라!"
다드내의 보고를 받은 새로운 왕 다리오. 그는 유다인들의 당돌한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제국의 문서고를 이 잡듯 뒤지게 했다. 그리고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악메다 궁성에서, 마침내 낡은 두루마리 하나가 발견되었다.
수십 년 전, 고레스 왕이 남긴 최초의 칙령. 그곳에는 성전의 크기와 재료, 심지어 '건축 비용은 왕실 국고에서 내어주라'는 충격적인 내용까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다리오 왕은 즉각 다드내에게 철퇴 같은 어명을 내렸다.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막지 마라! 오히려 너희가 거두는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유다인들에게 끊임없이 주어 공사가 지체되지 않게 하라. 만일 이 명령을 변조하는 자가 있다면, 그의 집에서 들보를 빼어내고 그를 그 위에 매달아 버릴 것이다!]
완벽한 역전이었다. 공사를 멈추게 하려던 방해꾼들은 졸지에 자신들의 세금을 바쳐 성전 건축을 지원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렇게 16년 동안 멈춰있던 예루살렘의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수많은 핍박과 정쟁, 멈춰진 시간 속에서도 끝내 꺾이지 않았던 불굴의 의지.
다리오 왕 제6년 아달월 3일. 마침내 찬란한 제2성전이 완공되었다. 잿더미로 돌아온 지 20여 년 만에 이룬 기적이었다. 성전 봉헌식이 열리고, 유월절 양을 잡는 유다인들의 얼굴에는 16년 전의 회한 대신, 다시는 빼앗기지 않을 뜨거운 기쁨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2부 끝]
[3부] 율법학자의 귀환
스룹바벨과 유다 백성들이 피땀 흘려 제2성전을 완공한 지 무려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페르시아 제국의 왕좌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넘어가 있었고, 바벨론 땅에 남아있던 유다인들은 어느덧 이방의 문화에 깊숙이 젖어 들고 있었다.
성전이라는 '건물'은 세워졌지만, 그 안을 채워야 할 '말씀'이 희미해져 가던 위기의 시대. 제국의 심장부에서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이자,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 천재적인 학자. 그의 이름은 에스라였다.
에스라는 단순히 글만 파는 샌님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온 마음을 다해 결심한 맹렬한 불꽃 같은 자였다. 그의 비범함과 올곧음은 절대 군주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마저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어느 날, 왕은 에스라에게 제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조서를 내렸다.
"내 나라에 있는 유다 백성 중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너는 내 손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라."
그것은 단순한 통행증이 아니었다. 왕과 일곱 자문관이 바치는 어마어마한 양의 금과 은, 제국 국고에서 무제한으로 물자를 빼 쓸 수 있는 백지수표, 심지어 예루살렘 영지의 법관과 재판관을 마음대로 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인사권까지 쥐여준 완벽한 '전권 위임'이었다.
왕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에스라를 따르는 두 번째 귀환 행렬이 아하바 강가에 집결했다. 족장들과 장정들만 약 1천 5백 명. 가족들까지 합치면 수천 명에 달하는 거대한 무리였다. 에스라는 출발 전, 텐트 사이를 돌며 백성들의 명단을 꼼꼼히 살폈다. 그런데 그의 미간이 차갑게 구겨졌다.
"…어찌 된 일이냐. 무너진 제사를 회복하러 가는 이 거대한 행렬에, 정작 제사를 주관할 레위 자손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바벨론의 편안한 삶에 안주해버린 레위인들은 아무도 험난한 예루살렘행을 자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에스라는 분노하는 대신 즉각 날쌘 사자들을 가시뱌 지방으로 급파했다.
"가서 성전을 위해 섬길 자들을 데려오라.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사자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마침내 38명의 레위인과 220명의 성전 봉사자들이 행렬에 합류했다. 비로소 진정한 영적 군대의 진용이 갖춰졌다.
하지만 가장 큰 위기는 이제부터였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무려 1,500km. 메마른 광야와 험준한 산악 지대를 거쳐야 하는 넉 달간의 죽음의 코스였다.
게다가 지금 에스라의 행렬 한가운데에는 왕과 귀족들이 바친 은 650달란트, 은그릇 100달란트, 금 100달란트… 현대 가치로 수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보물들이 실려 있었다. 사막의 도적 떼와 매복자들에게 이 행렬은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거대한 금고나 다름없었다.
측근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에스라에게 간청했다.
"나리, 이 엄청난 보물을 끌고 가면서 호위병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당장 왕께 사람을 보내어 우리를 지켜줄 보병과 마병을 요청하소서!"
그러나 에스라의 눈빛은 단호했다. 아니, 그 안에는 학자의 꼿꼿한 자존심과 하나님을 향한 맹렬한 신뢰가 뒤섞여 있었다.
"내가 전에 왕에게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자에게는 진노를 내리신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길이 무섭다며 이방의 군대를 구하는 것은… 나 에스라가 스스로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꼴이다. 나는 부끄러워서라도 왕에게 군대를 요청하지 않겠다!"
말을 마친 에스라는 광야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거친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의 방패는 칼과 창이 아니다. 전 백성은 들으라! 지금부터 금식하며, 우리와 우리 어린아이들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하나님께 간구하라!"
수천 명의 백성이 아하바 강가에 엎드려 부르짖기 시작했다. 황금의 산더미 앞에서 그들이 선택한 무기는 철저한 금식과 기도였다.
첫째 달 12일. 마침내 목숨을 건 귀환 행렬이 아하바 강을 떠나 광야로 몸을 던졌다.
길목 곳곳에는 이 거대한 먹잇감을 노리는 도적 떼와 이방 세력들이 매복해 있었다. 칠흑 같은 밤마다 멀리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와 칼을 가는 소리가 백성들의 목을 조여왔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그들의 진영을 철통처럼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다. 매복했던 자들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감히 행렬을 덮치지 못했고, 광야의 모래바람마저 그들의 흔적을 지워주었다.
그렇게 숨 막히는 100여 일의 여정이 지났다. 다섯째 달 1일. 흙먼지를 뒤집어쓴 에스라와 수천의 백성들이 마침내 예루살렘 성문에 들어섰다.
사흘의 달콤한 휴식 후, 성전 안에서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보물의 무게를 달아보는 일이었다. 제사장 므레못과 제사장들이 저울 앞에 섰다. 숨죽인 침묵 속에서 추의 눈금이 서서히 멈췄다.
"……단 1세겔도, 단 하나의 그릇도 잃어버리지 않았사옵니다!"
사막의 무법지대를 통과해 온 수조 원의 보물이 완벽하게 보존된 것이다. 그것은 페르시아의 군대가 지킨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손이 지켜낸 완벽한 승리였다.
에스라의 눈앞에 마침내 그토록 그리워하던 여호와의 성전이 서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너진 심령을 말씀의 검으로 완전히 도려내어 새롭게 살려내는 일뿐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개혁의 폭풍이, 예루살렘을 향해 몰아치고 있었다.
[3부 끝]
[4부] 비 내리는 광장의 통곡
무사히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에 보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렸을 때만 해도, 에스라의 가슴은 벅찬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제국의 왕도 우리를 돕고, 무너졌던 성전도 그럴듯하게 세워져 있지 않은가. 이제 율법만 제대로 가르치면 모든 것이 완벽해질 터였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환상은 몇몇 방백(지도자)들이 무거운 얼굴로 에스라를 찾아오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학사 에스라여… 드릴 말씀이 있소."
방백들의 입에서 나온 보고는 에스라의 고막을 찢어놓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이 땅의 백성들이, 심지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조차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 여부스 사람 등 이방 족속들과 가증한 풍속을 섞고 있소이다.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섞이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고 있소!"
"……뭐라?"
에스라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70년의 지독한 포로 생활. 그 끔찍한 징벌의 원인이 무엇이었던가. 바로 이방의 우상을 섬기고 그들과 통혼하며 거룩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기적처럼 고향에 돌아와 하나님의 은혜로 성전을 재건한 자들이, 다시 그 역겨운 죄악의 구렁텅이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니. 심지어 백성을 이끌어야 할 지도자급 인사들이 앞장서서 이방 여인들을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혈통을 더럽히고 있었다.
"아아아악-!!"
짐승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에스라는 입고 있던 겉옷과 속옷을 찢어발겼다. 극도의 분노와 절망감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의 머리털과 수염을 쥐어뜯으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가 막혀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넋을 잃고 저녁 제사 때까지 엎드려 있던 에스라는, 이내 비통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치켜들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겠나이다. 우리의 죄악이 정수리에 넘치고 허물이 하늘에 미쳤나이다! 주께서 이토록 큰 은혜를 베푸사 우리를 살려주셨거늘,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혼인하오리이까!"
에스라의 피를 토하는 듯한 회개 기도는 성전 앞뜰을 울렸다. 성전 앞에 엎드려 울부짖는 율법학자의 처절한 모습에, 예루살렘의 남녀노소가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대한 통곡 소리가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그때, 군중 속에서 엘람 자손 스가냐가 눈물을 닦으며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였으나… 아직 이스라엘에게 소망이 있나이다!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하나님의 명령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그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입니다!"
그것은 살을 찢고 뼈를 깎아내는 끔찍한 결단이었다.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자식까지 낳은 아내들을 전부 이방 땅으로 쫓아내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곪아 터진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이스라엘이라는 거룩한 공동체 전체가 다시 멸망할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에스라는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맹세대로 행하겠다는 서약을 받아냈다. 그리고 곧바로 전국에 엄포를 놓았다.
[사흘 안에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모든 재산을 적몰하고(빼앗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리라!]
아홉째 달 이십일. (오늘날의 12월경) 예루살렘 성전 앞 광장에 수만 명의 백성이 운집했다. 겨울의 한기가 뼈를 스미는 가운데, 하늘마저 이들의 찢어지는 마음을 대변하듯 차갑고 거센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살을 에는 추위와, 자신의 가족을 끊어내야 한다는 지독한 두려움. 백성들은 광장에 서서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그들의 얼굴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폭우를 맞으며 단상에 선 에스라가 엄중한 목소리로 선포했다.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광장을 가득 메운 백성들이 폭우 속에서 한목소리로 절규하듯 대답했다.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하지만 수만 명의 이혼과 호적 정리를 하루아침에 끝낼 수는 없었다. 비는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고, 사안은 너무나도 중대했다. 결국 각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이 날짜를 정해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들을 일일이 조사하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무려 석 달이라는 끔찍하고도 고통스러운 조사 기간이 이어졌다.
첫째 달 초하루. 마침내 이방 여인과 통혼한 자들의 뼈아픈 조사가 모두 끝났다. 대제사장 예수아의 가문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명단에 오른 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이방 여인들을 돌려보냈고, 속건제(회개의 제사)로 숫양을 바치며 철저히 엎드렸다.
눈물과 통곡으로 얼룩졌던 이별. 그러나 그것은 잔인함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치러야만 했던 가장 값비싼 대가였다.
무너진 성전의 벽을 다시 세우는 데 20년이 걸렸다면, 무너진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 세우고 거룩함을 회복하는 데는 살을 도려내는 듯한 눈물과 기도가 필요했다.
비 내리는 광장의 처절한 통곡 속에서, 진짜 여호와의 성전인 '이스라엘의 신앙'이 마침내 비로소 견고하게 다시 세워지고 있었다.
[에스라 - 完]
[ 📜 독자를 위한 안내 및 주의사항 ]
본 작품은 성경을 처음 접하거나 역사서의 건조한 기록을 읽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보다 쉽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획된 '드라마 웹성경'입니다.
작품의 뼈대와 핵심 진리는 성경 원문을 철저히 따르고 있으나, 서사의 몰입감과 입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방대한 족보와 외교 문서를 극적으로 압축하고, 인물들의 대사와 감정선에 웹소설 형태의 문학적 각색을 더했습니다. 이는 성경 읽기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장치일 뿐, 신학적 교리나 역사적 사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변개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밝힙니다.
이 글이 성경이라는 위대하고 방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는 편안한 디딤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무너진 성전이 세워지는 감동을 느끼셨다면, 이제 실제 성경 원문을 펼쳐 그 안에 담긴 깊고 변함없는 진리의 텍스트를 직접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